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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했지만, 탕진한 사랑
    12월 8일은 비틀스의 아이콘 존 레넌의 사후 40주기가 된 날입니다. 매년 이맘 때, 추모 인파로 붐볐어야 할 뉴욕 센트럴파크의 레넌 추모 공원엔 코로나19 때문에 사후 가장 쓸쓸한 추모회가 되었더군요. 비틀스는 젊은 날 세기의 우상이었지요. 레넌이 요노요코에 빠져 밴드를 위태롭게 할 때 그녀가 참 밉상이었는데, 흐르는 세월속에서 고등어 푸른 등처럼 선명한 레넌의 진실된 사랑의 언어를 발견합니다. “매일 신께 감사해. 운명이 우리 두 영혼을 맺어준 것을. 내가 태어난 건 오직 요노요코 널 만나기 위해서고, 내가 어른이 된 것은 너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였어.” 만인의 사랑을 받고도 오직 한 여자만 사랑했던 남자. 두 사람의 운명은 레넌이 그녀의 그림과 만나면서 시작되었지요. 사이가 깊어지면서 레넌은 비틀스와 멀어지고 해체가 선언되자 모든 비난이 그녀를 향했습니다. 음악잡지 커버 사진을 찍는 날, 레넌이 말합니다. “이게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며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고 그 유명한 ‘사랑의 포즈’ 를 취했지요.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에 지나지 않아도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다.”라는 명구를 남기면서. 그것이 마지막임을 몰랐을까. 그날 밤 레넌은 집으로 가던 중 그의 광팬 체프만이 쏜 총에 최후를 맞지요. 그러고 40년, 올해 88세의 요노요코는 “난 지금도 그를 잊을 수 없단다”며 두 아들에게 연서를 썼다고해요. 12월엔 문득 살아나는 기억들이 많아요. 젊은 시절, 매년 네 친구 가정이 함께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호두까기인형을 보고, 뮤지칼을 보던 기억이 아스라이 살아납니다. 당시 ‘호두까기 인형’처럼 12월 공연으로 빠지지 않던 것이 비련의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다룬 ‘빠담 빠담 빠담’입니다. 매번 피아프 역을 맡은 윤복희가 피를 토하듯 열창할 때, 뭉클하던 기억이 따스합니다. 거리의 노래 소녀 피아프가 파리의 유명한 카바레 사장 르프레의 눈에 띤 건 행운이었지요. 무명의 그녀에게 스타 탄생의 변주곡이 울립니다. 당대 유명한 사교모임에서 펑크 난 가수를 대신하면서죠. 그러나 그것이 그녀 운명의 서곡일 줄은 몰랐어요. 르프레를 사랑하면서 사랑에 눈 뜨지만 남자의 돌연사로 물거품이 되고 비극은 시작됩니다. 삶의 좌절을 곱씹던 그녀는 배우 이브몽땅을 만나 구원되는 듯했어요. 그녀의 인생 속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 바람둥이 이브몽땅은 오래 가지 않아 그녀를 떠납니다. 깊은 시름에 알콜로 위안 받던 그녀에게 마지막 구원자로 등판한 이가 세계 미들급 챔피언 복서 마르셀입니다. 그녀는 모든 걸 바쳐 세기의 로맨스를 불태우지만, 운명은 마르셀까지 교통사고로 앗아가죠. 기자가 묻고 답해요. “죽음이 두렵나요?” “외로움 만큼은 아니에요.” 죽음보다 무서웠던 외로움을 술과 모르핀으로 달래던 피아프. 결국 47세에 비운의 삶을 마칩니다. 피아프 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비련의 여인이 마릴린 먼로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볼이 된 먼로는 어려서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어머니를 정신병으로 잃는 극한 환경속에 성장했어요. 모든 남성을 열광시키며 한 해 30개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되었던 먼로는 굶어죽지 않고자 누드사진을 찍었다고 고백합니다. 첫 결혼에 실패하고 유명 야구선수와 두 번째 결혼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어요. 먼로는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섹시한 여자로 주목 받는 동시에 골빈 여자란 소리도 함께 들었지요. “난 잠자리에서 샤넬5 이외엔 아무 것도 입지 않아요.” 이 말에는 사람들의 시선에 숨 막혀 했던 그녀의 저항적 음유가 깔렸습니다. 행복을 희구했던 먼로는 유명 극작가와 세 번째 결혼에 성공하나 그토록 갖고자 한 아기를 유산하고 그 충격에 다시 이혼합니다. 어딜가도 환호가 넘쳐나고 영화 출연 제의가 쏟아졌지만 모두 섹스어필뿐이었어요. 극도의 신경쇠약과 무대공포증에 시달리는 먼로. 헐리우드 최고의 여배우 중 한 사람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삶은 원했던 아이도, 남편도, 행복도 거머쥐지 못하고 의문사로 생을 마칩니다. 습도, 온도, 햇빛 같은 평범한 일상을 못 누리고 주어진 제몫의 사랑마저 탕진하고 만 사람들. 이 무슨 조화 속일까. 그 속을 모르니 운명이라고 돌릴 수밖에요. 세월과 운명은 진정 거스를 수 없는 걸까. (이관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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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3
  • 살면서 밑줄 긋기
    우리는 세대를 구분할 때 종종 실수를 저지릅니다. 애나 어른이나 한 명 한 명이 다른 인생이고 그대로가 우주인데, 그렇게 보지 못하고 한 묶음으로 처리합니다. 젊은이들은 칠팔십 대 사람을 생물 연령만으로 따져 노인으로 규정하고, 사오십 대 사람은 싸잡아 아저씨로 병렬 처리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6.25 70주년을 맞으면서 깨달았습니다. 비로소 그런 인식에 매몰돼 있던 나를 끄집어낼 수 있었지요. 나라 위해 싸우다 숨진 영령 한 분 한 분이 다 광활한 우주인데, 전사자라는 한 묶음에 일렬횡대로 처리해온 내 생각이 미안합니다. 그러다 시 한편을 찾았지요. 시인 정현종의 ‘방문객’ 입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는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마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사람들에 대한 선의는 인간의 의무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선의로 대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 하나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에요. 우스꽝스럽고, 누추하고, 바보 같은 사람일지라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그분도 고결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외모는 다 달라도, 속사람은 다 같지요. 잘났든 못났든 사람에게는 나만의 영혼이 살고 있으니까요. 누가 나를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고, 혐오스런 짓을 하더라도 “저 사람의 사는 방법이려니” 하고 넘길 일입니다. 주유천하 하는 김삿갓이 술 한 잔에 너털웃음을 짓고 다닐 수 있었던 데는 삶의 이치와 인간의 의무를 통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혐오를 앞세운다면, 그는 깨닫지도 못할 것이고 나는 더 큰 증오만 키우겠지요. 자기 자신은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 남을 바꾸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유일하게 약발이 잘 듣는 한 가지가 있다면 사람을 인격체로 예우하고 사랑으로 감싸는 일입니다. 쇼펜하우어도 만인에게 할 일은 ‘오직 선의로 대하라’는 것이었어요. 여기서 시 하나 더, 장석주의 ‘대추 한 알’을 소개합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대추 한 알에 우리 인생을 담은 시인의 눈이 아름다워요. 잘 생긴 대추나 못 생긴 대추나 똑같이 추운 밤을 견뎠습니다. 비바람과 천둥, 번개, 벼락을 맞으며 상처를 보듬었어요. 모두 우주의 사랑을 듬뿍 받아 결실한 것들입니다. 대추처럼 사람도 둥글둥글 살기까지, 제 혼자 노력으로 된 건 없습니다. 오스스 몸을 떨며 무서리를 맞고, 쨍쨍 내려쬐는 햇볕에 그을렸고요. 초승달이 둥근달이 되고 이지러지기를 또 얼마나 보며 기다렸을까. 아이 어른도 노인도 시련을 이기지 못하면 저렇게 붉고 둥근 대추 한 알을 맺지 못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지 못하고 구박함은, 선의를 저버리는 것이고 꽃잎을 때리는 빗줄기의 심술에 다름 아니죠.. 한 자리에서도 화려하게 먼저 피는 꽃이 있고, 뒤늦게 서리를 맞으며 꽃장을 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사람을 불의로 예단함은 죄악이라 했어요. 물을 주고 북을 주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 해도,,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은 오로지 하늘의 소관입니다. 나이가 들면 이따금 살아온 내가 기특하고 대견스러울 때가 있지요. 까칠한 상전을 모시느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이제는 내가 함부로 대해 탈이난 몸을 상전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깝다는 이유로 소중함을 모르고 살 때가 많아요. 한 번쯤 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보세요. “수고했고 미안하다. 잘 부탁한다.” 몸도 칭찬하면 새 힘을 낼 겁니다. 선의를 아니까. (이관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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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06
  • 나이 듦에 대하여
    왜 사람에게는 시든다는 말 대신 늙는다는 말을 쓸까. 나무도 꽃들도 다 시들어버린다면서 사람은 왜 세상을 뜬다고 할까. 무심코 흘려보냈던 말들이 잔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나이가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언젠가부터 보고 느끼지 못한 것들이 몸에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갑자기 눈귀가 밝아질 리도 없을 텐데... 살아온 날들로 많은 생각이 기울면서 젖는 현상일 것이다. 너무 인생을 무심히 살아왔다는, 그래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나누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연민이거나, 회한 아니면 후회일 수도 있겠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는 걸 자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것을 앞세워 살지는 않았는지, 인생이란 산허리를 내려오다가 문득 무심히 지나친 많은 일들이 잠들지 못하고 부스스 눈을 뜨곤 한다.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나를 부르고 찾기도 했을 텐데…. 그때 나는 보지 못했고 응대하지 못했던 것들이, 나이 듦이 현실이 된 나를 용하게 기억하고 불러 세운다. 석양의 그림자 같은 덧없는 인생을 살면서 부질없는 욕심과 허상을 잡으려고 때 묻히고 얼룩진 나를 말이다. 시듦으로는 그것을 알리 없다. 오직 나이 듦으로 아는 진리이다. 이는 늙는다는 말의 또 다른 음유이다. 나이가 들면 젊은 날과 달리 주고받는 것이 다르고, 떠남과 만남에도 유별함이 생기니까. 이생이 허망할수록 내생에 기대고 싶고, 병들어 건강을 다치면 무심했던 내 몸의 소중함을 깨치는 이치와 같다. 보는 눈이 흐려지면 듣는 귀라도 쌩쌩했으면 좋으련만, 귀마저 예전 같지 않다. 돌아보면 살아온 지난날들이 영특하지 못했고 좀은 미련스러웠다. 눈은 침침해졌다며 수술하고, 좋다는 건 다 찾아 먹고, 건강 보조식품까지 챙겨 들면서, 실로 귀중한 것이 귀라는 것은 잘 몰랐다. 눈은 흐려져도 살 수 있지만, 귀가 어두워지면 사람이 멀어진다는 것을…. 시력을 잃으면 청력이 강해지듯 미움을 버리면 커지는 것도 있다.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비감해지고 미움과 원망이 커진다. 소유는 머리에 망념을 부르기 쉽다. 아직도 채울 것이 남은 사람은 부족함에 갈증이 남아도, 이만하면 됐다는 사람은 마음에 족함을 갖게 된다. 옛 문장에 같은 것을 갖고도 ‘팔여(八餘 8개가 남음)’라고 만족해하는 사람이 있고, 또 누구는 ‘팔부족(八不足)’이라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기준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기준은 누가 정해 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세우는 것이다. 나이 듦이 시듦보다 차원이 다른 것은 긴 세월을 살며 경험하고 축적한 내 인생의 스펙이 내 기준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푸르던 세월이 사위어 가고 있다. 생명의 경이에 눈 떴던 봄이 이울더니, 노동의 보람을 주던 여름이 오가고, 그 자리로 목마른 가을이 물들고, 그마저 잠깐, 어느새 낙엽귀근(落葉歸根)을 가늠해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 굽은 등 너머 노을 진 서녘에서 부엉이가 울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나이 듦이란, 떠난 것에 미련 두지 말고, 잃은 것에 연민하지 말고, 마음에 찌든 미움이나 원망은 관용하고 화해할 시기임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다 그렇지.” “별난 인생 있나?” “나도 잘한 게 없네. 미안하네.” 고까웠던 일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곰삭힌 감정은 다 흐르는 세월에 씻어내고 텅 빈 마음으로 내 삶을 되돌아보며 그곳에 명상의 시간으로 충만하자. 나이 듦이란, 비천한 인생의 한계를 알고 참회와 감사로 채우는 시간이다. 잊고 살았던 것들에 눈 뜨고, 그들을 사랑하고 감사해야 할 때이다. 살아온 것에 감사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무엇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할 시간이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이만하면 잘 살았다 감사하다.” 마음에 평강이 깃든다. 무한한 성찰과 감사 뒤로 하늘의 자비와 은총이 내린다. 태양 빛으로 짱짱한 한낮도 아름다웠지만, 낙조가 들 때의 고혹함도 매력적이다. 생의 어느 한 곳 의미가 없는 과정이 있을까. 해가 많이 기울었다. 촘촘하던 시간도 그만큼 헐거워졌다. 동네 골목에 드리운 그림자도 한층 깊고 서늘해졌다. 누가 노래했던가 나이 듦은 늙어감이 아니라 옻칠을 더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위로하면서 격려하면서 남은 세월을 배웅해야 하리라.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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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30
  • 제8회 대한민국 노벨사이언스상 대상 시상식 개최
    과학전문지 노벨사이언스가 창간 8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27일, 오후 2시 서울대학교 호암 교수회관 목련홀에서 제8회 대한민국 노벨사이언스 대상 시상식과 함께 노벨사이언스 포럼을 개최하였다. 올해는 특히 노벨 문학상에 한국의 작가 한강이 수상하게 됨에 따라서 이에 고무되어 노벨 과학상 수상도 멀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갖고 폭넓은 시상자를 선발하였다. 2024년 노벨 사이언스 상은 과학대상 4명, 과학기술대상 6명, 평화봉사상 1명, 과학기술공로상 2명, 과학교육교사상 2명, 감사장 5명 모두 20명에게 수여했다, 특히 과학대상자는 국내 최초로 경구용 치매 치료제의 글로벌 3상 임상시험 진입에 성공한 대구 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김경진, 그리고 국내외 양자정보과학 기술 생태계 조성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고등과학원 양자 우주연구센터 석좌교수 김재완 교수가 차지하였다. 그리고 과학기술 대상에는 저분자 기반 뇌질환 치료제 신약후보물질 등 치매 치료기술을 개발한 큐어버스 조성진 사장이 차지하였다. 과학 대상을 수상한 김경진 석좌교수는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신경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뇌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이번에 한국뇌연구원 제2대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지난 10년 동안 21세기 프런티어 연구개발사업의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 치료기술개발 연구사업단' 단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1998년 뇌연구촉진법 제정과 한국뇌연구원 설립 계획 수립에 기여 했다. 또한 한국뇌학회 회장, 한국뇌신경과학회 회장 등 국내외 학회장을 역임하면서 SCI급 논문을 포함한 국내외 학술지에 20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고, 2011년 대한민국학술원상 등을 수상하였다. 과학 대상을 수상한 김재완 석좌교수는 고등과학원에서 정년 퇴임했고 현재 고등과학원 양자 우주연구센터 석좌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양자정보과학 컨퍼런스(AQIS) 운영위원장으로서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연구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져 아시아권 양자물리학 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특히 양자물질계를 시뮬레이션 하려면 양자계로 된 컴퓨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단위 아래로 내려가면 양자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컴퓨터로는 불분명해진다. 더욱이 트랜지스터에 장애물을 설치해서 전자를 가둬두는데, 나노 단위가 되면 '터널효과'에 의해 전자가 빠져나간다. 0인지 1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양자 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게 양자컴퓨터를 만들어 중첩, 양자터널 등을 적극적으로 컨트롤 해야 한다. 양자상태를 컨트롤하고 측정하는 건 센서 기술이며 센서 기술이 발전하면 양자컴퓨터, 양자암호통신 기술도 함께 발전한다. 양자 센서는 양자컴퓨터에 비해 발전시키기가 수월하고 양자암호통신은 대규모 인프라 필요하지만 양자 센서는 대규모 인프라나 대규모 투자가 없어도 된다는 점이 장점이다. 그렇지만 양자컴퓨터도 중요하지만 이의 기반이 되는 양자 센서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양자컴퓨터는 개발됐을 경우 임팩트가 크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오류는 있지만 일정 부분 슈퍼컴퓨터보다 연산 속도가 빠른 중간 형태의 양자컴퓨터(NISQ)가 나올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노벨 사이언스 포럼에서는 기술개발 성공사례로 먹는 치매 신약후보 물질로 5천억원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큐어버스 조성진 대표와 전통 발효 연구 42년 항바이러스 효과를 입증한 홍동삼을 발명한 효성원(주) 김성현 회장이 발표하였다. ㈜ 큐어버스 조성진 대표이사는 지난 10월 16일,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파마와 먹는 치매 신약후보 물질 ‘CV-01’를 총 3억7천만 달러(5,600억원) 규모로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기술이전 이외 판매로 발생하는 로열티는 별도로 받는다. 이로써 안젤리니파마는 중국과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상업화를 할 수 있는 독점권을 갖게 된다, 조성진 대표는 KIST뇌질환극복연구단 단장을 지낸 박기덕 단장, K-MEDIhub의 진정욱 박사와 함께 연구 네트워크를 갖고 난치성 질환 및 항암제 신약 개발을 연구해온 큐어버스를 만들었다. 특히 KIST 뇌과학융합단장으로서 파키슨병, 알츠하이머, 다발성 경화증 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박기덕 박사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효성원(주) 김성현 회장은 40여년간 전통 법제와 전통 발효식품에 오롯이 몰두해 온 홍동삼 발명가이다. 누룩이나 현미를 기본으로 33가지 이상의 산야초를 법제하거나 발효시켜 항아리에서 3년 이상 자연 숙성시킨 전통 흑초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 6년근 인삼을 9증9동9포해서 추출한 홍동삼 진액을 첨가한 흥동삼 전통 흑초와 홍동삼 금강초, 홍동삼 생기단, 홍동삼 발효비누, 홍동삼 전통된장, 홍동삼 발효김치 등을 출시하였다. 동지와 입춘 사이에 해풍을 맞으며 자란 강화 인삼을 9번 찌고 9번 얼린 후 9번 건조하는 독보적인 법제 발효기술로 제조되는 홍동삼은 유효성분과 미생물의 개체수를 증가시켜 항바이러스 신물질 검출에 성공하였다. 이런 발효식품이 인체가 가장 흡수하기 좋은 천연 나노 상태로 되어 건강에 이롭고 평생 먹어도 내성이 없어 면역력 증강애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4년 대한민국 노벨사이언스상 수상자> 1) 과학대상 4명 과학대상 : 김경진 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 교수) 김재완 (고등과학원 양자우주센터 석학 교수) 우수과학자상 : 조상준 ((주) 파크시스템스 전무) 신장균 (아이삭 기술연구소 소장) 2) 과학기술대상 6명 과학기술 대상 : 조성진( ㈜큐어버스 대표) 과학기술 창조상 : 김성현 (효성원(주) 회장) 과학기술 혁신상 : 곽승환(( ㈜지큐티 코리아 대표) 과학기술 융합상 : 최환호 ((주)퀀텀인텔리전스 대표) 과학기술 창의상 : 이종찬((주) 우주엔지니어링 대표) 과학기술 신기술상 :이진호 ((주) 콘스텍코리아 대표) 3) 평화봉사대상 1명 세계 평화봉사대상 : 김주철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 선교협회 총회장) 4) 과학기술 공로상 2명 특별공로상 : 박준희 (아이넷 방송 회장) 특별공로상 : 김성현 (효성원 회장/ 동인학당 평생교육원장) 5) 과학교육교사상 2명 과학교육 우수교사상 : 안대영( 신남고등학교 수석교사) 박혁상 (청원고등학교 교사, 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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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30
  • 우리는 낮은 자입니다.
    신부 서품을 받아 한 성당의 사제가 되기 위해 떠나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비단 보자기로 싼 작은 종이상자를 내밉니다. 무엇이냐고 묻자 어머니는 사제관에 들어가거든 조용한 시간에 풀어보라고 이릅니다.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기도는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신부는 사제관 한쪽에 묻어둔 상자를 꺼내 보자기를 풀었습니다. 풀자 안에는 누렇게 빛이 바랜 아주 작은 아기 옷, 배내옷이 들어 있습니다. 그 속에 어머니 편지가 곱게 접혀 있었지요. 어떤 자리에 가 있더라도 늘 기억하라는 어머니의 기도입니다. “ 예전엔 나도 한없이 어리고 작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낮은 신부님이 돼 달라, 나도 그렇게 기도하겠다” 는 글입니다. 편지를 읽던 신부님의 가슴도 뜨거워졌겠지만, 사연을 읽는 내 눈시울도 따라 붉어집니다. 광야 같은 세상길, 어디로 어떻게 걸어가다가 고단한 삶의 하룻밤을 쉬어야 할까. 그 가늠자를 선물한 이야기입니다. 뜨거움, 기쁨, 섬김, 눈부심, 그런 것으로 가슴 벅차오르는 사연을 마주한 지 언제일까? ‘ 누구처럼’ 살고 싶다고 희망을 안겨준 분들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봄날입니다. 우리는 모두 작은 자고, 한없이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 사실을 잊고 살지는 않는지, 나도 어머니가 주신 배내옷 한 벌 가슴에 품고 살 수는 없을까. 지난 2월로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11년입니다. 스스로 바보로 칭한 추기경은 일생을 배내옷을 품고 사신 분이지요. 마흔 일곱에 한국 최초,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된 후, 일생을 스스로 바보라고 칭하며, 넉넉한 사랑으로 핍박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품어주고, 사회를 향해 묵직한 목소리를 내던 그 모습은 아직도 울림을 줍니다. 모든 사람에게 긍정의 목소리를 전해준 분이 1951년 처음 사제복을 입었을 때 선택한 성구(聖句)는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였고,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인사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였습니다. 그는 이 시대의 참 어른이었습니다. 최근 서울대교구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펴낸 김수환 추기경’에는 세계 최연소 추기경에 오른 후 젊은 사제 김수환이 미리 준비한 유서가 있습니다. 한 장짜리 사무용지에 또박또박 쓰인 한 장의 유서는 1971년 2월 21일 밤으로 마무리됩니다. 유서에는 “그리스도께서 가장 깊이 현존하시는 가난한 사람들, 우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등 모든 불우한 사람들 속에 저는 있지 못했습니다.” “ 형제 여러분, 저의 사랑의 부족을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말이 가슴을 덥혀줍니다. 열정이 넘치는 마흔아홉 살, 추기경이 일찌감치 유서를 준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일생을 통한 추기경의 고백이고, 다짐이 아니었을까. 추기경은 잘못된 정치에도 묵직한 매시지를 날렸습니다. 정권의 수배를 받은 학생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명동성당 앞에서 경찰에게 말합니다. 나를 넘고 지나가라, 그러면 뒤에 신부들이 있을 것이고, 또 넘어가면 뒤엔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준엄하게 불의를 거부한 어른이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이었어요. TV를 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추기경이 ‘사랑의 미로’를 부르는 모습을 본 겁니다. 그 소박함과 추기경도 보통남자라는 모습에 우리들 눈은 웃어도 마음은 뜨거움으로 뭉클했지요. 추기경은 종교의 편 가르기를 경계했습니다. 인생의 구원이라는 대명제 앞에 천주교, 불교는 더 이상 경계 대상이 아니라며, 어느 해 부처님 오신 날에는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서 열린 음악회에 법정 스님과 나란히 앉아 화합의 아름다움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촛불, 반미시위 등을 둘러싸고 일부 급진파 종교인의 공격을 받던 2004년 즈음입니다. 추기경은 자신의 색깔을 묻는 질문에 굳이 말하면 바꿔가는 ‘ 보수(補修)’라고 뼈 있는 유머로 답했지요.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깜짝 선언을 합니다. “나도 출마합니다. 기호는 1번이고, 지역구는 전국구입니다.” 바보 추기경의 유머는 늘 깨달음을 동반했지요. 정치권을 향해서는 “모든 이를 위해 목숨을 내건 예수님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하라”고 했죠. 하지만 21대 총선을 앞둔 지금. 좌든 우든 고쳐보려는 ‘보수(補修)’ 의 노력은 부족합니다. 마른 잎 서걱대는 삭막한 세상에서 한없이 낮은 자리를 찾아다닌 김수환 추기경. ‘내 탓입니다’를 선창해 사람들마다 자동차 뒷 유리에 스티커를 달게 한 그분의 따뜻한 리더십이 그립습니다. 아픔 있는 자에겐 “고통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입니다.” 위로하고, 젊은이에겐 “가끔은 칠흑 같은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바라보라.”고 등을 토닥이고, 삶의 길을 묻는 자에겐 ‘인간의 길이란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 내면적으로 풍요롭게’ 사느냐에 있습니다.” 라며 다독여 주었지요. ( 이관순님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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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23
  • 양평, ‘치유의 숲’에서
    고즈넉하다 못해 고혹하기조차 한 투명한 날빛. 사그락 사그락, 들리는 건 낙엽 밟히는 소리뿐이다. 만추로 물든 숲길은 부드러우면서 쓸쓸했다. 멀리서 산까치 울음소리가 들렸다. 더없이 높고 쾌청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농밀한 파란색 커튼을 두르고 있다. 막 볶아낸 커피 향 같은 낙엽 냄새가 이맘때 즐기는 ‘만추의 향’이다. 향 중에 ‘여름 풀향’과 ‘낙엽 향’만 한 것이 또 있을까. 보송한 가을 햇살이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쏟아졌다. ‘노는 볕이 아깝다’며 장독대를 열어놓고 이부자리를 내다 말리시던 어머니 얼굴이 가을볕을 타고 떠오른다. 숲길에 바람이 일자 우수수 낙엽들이 저마다 몸을 뒤척이고, 코끝을 스치는 낙엽 향에 후각마저 흐뭇하다. 낙엽에는 일상에서 듣기 어려운 고주파가 있어 우울증 같은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데 좋다고 한다. 그 편안함 때문일까. 낙엽을 보고 있으면 아팠던 기억과 기뻤던 추억이 동시에 밀려온다. 양평의 한 ‘치유의 숲’에서 소설 《빙점(氷點)》의 배경이 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아사히카와(旭川)의 숲을 떠올렸다. 엊그제 다시 읽기를 끝낸 두툼한 소설이 뇌파에 남긴 잔상 때문일 것이다.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소설 《빙점》은 1966년에 출간된 이후 4,300만 부 넘게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시대와 계층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작품이다. 40년 만에 다시 손에 잡은 《빙점》은 인간의 원죄를 파고드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작품의 재미와 매력을 더해주었다. 소설은 ‘섭씨 0도’라는 ‘빙점’의 모호성을 복선으로 깔고 있다. 사랑과 유혹, 배신과 복수, 희생과 용서라는 그 모호한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의 한계와 바닥에 스며 있는 원죄가 모두를 혼돈 속으로 빠뜨린다. 일밖에 모르는 병원장(스지구치)의 아내 나쓰에는 젊은 의사와 은밀한 사랑을 즐기려고 어린 딸 로리코를 밖으로 내보낸 것이, 유괴범에 의해 살해되는 비극을 불렀다. 이에 더해 아내의 부정까지 알게 된 스지 구치는 극심한 배신감과 복수심이 들끓어 잔인하게도 범인의 딸을 입양하면서 주인공들의 가슴에 갈등의 불을 지핀다. 아픔을 달래려고 아내는 새 딸에게 요코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온갖 정성을 다 쏟으면서 가정은 겉으로 다시 평화를 되찾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요코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서재를 청소하던 나쓰에는 남편의 일기장에 손을 대다가 요코의 신원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자신을 향한 남편의 증오를 알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딸을 죽인 살인범의 자식 요코에 대한 애증이 회오리쳤다. 요코는 갑자기 변한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상황을 묵묵히 견뎌냈다. 세월이 지나 18세 된 요코에게 한 청년이 나타나 사랑을 고백하는데, 나쓰에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요코가 그런 훌륭한 집안의 자제와 결혼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다. “요코가 우리 딸이 못 누린 행복을 누릴 수는 없어.” 끝내 나쓰에는 청년 앞에서 요코가 자신의 딸 로리코를 죽인 범인의 딸임을 폭로하고 만다. 그제사 요코는 자신에게 살인범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동안 많은 아픔을 이겨낸 요코였지만, 원죄의 피가 흐른다는 본질적인 죄의식은 끝내 여린 여자를 자살로 내몰고 만다. 로리코가 살해된 그 강가에서… 그러나 진실은 요코가 범죄자의 자식이 아니었다는 것. 요코를 소개한 남편 친구가 입을 연 것이다. “차마 범인의 딸을 자네에게 입양시킬 수는 없었네. 적당할 때 말하려고 했네.” 진실이 밝혀지자 부부는 죄책감에 절규하면서 요코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쓴다. 인상 깊었던 건 《빙점》의 마지막 대목이었다. 사생아로 태어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요코가 미움과 증오로 가득한 삶을 버리기 위해 하얗게 눈이 덮인 겨울날, 언덕길을 오르는 장면이다. 높은 언덕에 오른 요코는 하얀 눈길 위에 남겨놓은 자신의 발자국을 돌아보았다. 분명히 자신은 똑바로 앞을 향해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눈 위에 나 있는 발자국은 삐뚤빼뚤 흐트러져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원죄의 후예인 연약한 인간을 깨닫게 된다. 누구에게도 돌을 던질 수 없는, 사람은 모두 용서와 화해의 대상이란 것을. 사랑만이 가장 아름다운 적정 온도이며 모든 결함도 덮어줄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신이 가르치는 사랑이란 것을 말이다. 1922년 홋카이도 아사히카와 시에서 태어난 미우라 아야코는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이 일어날 때에 초등학교 교사로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어린 학생들에게 이 전쟁은 성전(聖戰)이라 가르친 군국 교사였다. 그러나 1945년 8월,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자기가 가르친 것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전쟁의 도구로 교육시킨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고, 폐병이 들도록 죄책감에 시달렸다. 미우라 아야코는 생전에, “한국이나 중국에 가게 된다면, 저는 그 나라 땅을 발로 밟고 걸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고 기어갈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작가로 성공한 후 자신의 집을 찾는 한국인 방문객들에게 먼저 바닥에 엎드리고 사죄부터 했다. “당신 나라에 일본이 행한 침략과 폭력의 죄를 참회합니다.” 용서를 구한 후 손님을 맞았다고 한다.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든다는 계절도 저물고 있다. 이때를 콕 짚어 시인 서정주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고 권했다. 고은이 쓰고 김민기가 곡을 붙인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를 부른 최양숙은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라며 만추의 손끝을 내밀어 진심을 노래했다. 자연의 색은 무한한 그리움을 일깨우기도 하지만 무한한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흙을 맨발로 밟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이나, 황토 방에 누우면 심신이 안락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맘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짧은 시간. 이 가을이 주는 자연의 색과 온도는 가장 아름답고 안온한 ‘적정 온도’를 느끼게 한다. 양평 산음 자연휴양림 ‘치유의 숲’에서 소설 《빙점》을 떠올리고, 그리고 한참을 나뭇가지에 남은 붉은 잎들이 드리는 이생에서의 마지막 미사를 지켜보았다. 늘 아름다운 건 잠시뿐. 낙엽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다. 이 또한 곧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고, 화석의 시간으로 남으리.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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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16
  • 개(犬)의 세월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동네 골목을 지나다니다 흠칫 긴장할 때가 있었다. ‘개 조심!’ 대문에 개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글이나 표지판을 보면 금방 맹견이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개 조심!’ ‘개 있으니 조심하세요’ 처럼 얌전한 문구도 있지만, 더러는 투견으로 단련된 으스스한 개를 떠올리게 하는 ‘맹견 주의!’ ‘사나운 불도그 조심!’ 같은 섬뜩한 팻말도 있었다. 그것이 도둑 같은 불청객을 차단하는 ‘엄포용’ ‘방범용’ 임을 철이 들어서 알았다. ‘맹견주의’라고 대문에 써 붙인 친척집에 삼촌 등 뒤에 붙어 가슴 조이며 들어갔다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나오는 강아지를 보고 말이다. 사기를 당한 듯한 묘한 기분에 입술만 깨물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맹견 좋아하네.’ ‘우리 집에 강아지 있어요’라고 비아냥대는 버릇이 생겼다. 라틴어 ‘카베 카넴(cave canem)’도 ‘개조심’을 이르는 말이다. 고대 로마의 저택 현관 벽에는 쇠사슬에 매인 사나운 맹견을 묘사한 벽화가 그려 있고, 그 옆에다 ‘Cave Canem’이라는 경고문을 써놓았다. 화산 폭발로 묻힌 이태리 남부 나폴리만의 도시 폼페이 유적에서 사납게 으르렁대는 개를 모자이크 한 장식이 나온 걸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개와 사람의 친소는 소만큼 친밀한 식구의 반열에 있다. 하지만 원래 개 팔자란 어떤 것인가. 찌그러진 양은 그릇에 던져 주는 먹다 남은 밥이나 감지덕지 꼬리를 흔들며 먹던 팔자가 아니던가. 그러한 개 팔자가 상전벽해가 되어 요즘처럼 상팔자로 활짝 핀 세상을 만난 것이다. 개들이 안방으로 납시고, 사람도 못 받는 호의호식 하며 건강 캐어를 받는 온갖 호사를 누리는 개의 세월이 되었다. 그러나 상놈은 상놈인 것이, 아직도 우리가 쓰는 언어에서 개는 멸시 천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개자식’ ‘개차반’ ‘개놈’ ‘개소리’ ‘개뼈다귀 같은 소리’ ‘개 풀 먹는 소리’ 등 천박한 냄새를 폴폴 풍기는 비속어에는 여전히 개를 들먹이는 말로 차고 넘치니까…. 한때는 개들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곳도 있었다. 경기도 성남의 모란시장. 많을 때는 1년에 8만 마리까지 판매됐다는 원조 개 시장이다. 전국 최대 규모의 도축시설이 있던 이곳은 끈질긴 동물 학대와 혐오 논란을 부르다가 2016년 마침내 시설 철거에 합의를 했다. 당시 성남시장은 “누구도 해결 못한 50년 숙제를 이재명이 해결했다”라고 자랑했지만, 그렇다고 개고기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시장에선 개고기가 버젓이 팔리고 있으니까. 얼마 전 성남에 갔다가 모란시장에서 옛 친지를 만났다. 근 20년 만의 만남인데도, 옛 단골손님과 식당 주인 사이엔 데면데면함 없이 금방 옛 친분이 살아났다. 그는 40년을 모란시장에서 보신탕을 끓였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각계의 인사들을 단골로 확보할 만큼 상술이 좋은 데다 성품까지 화끈해 모두가 좋아한 ‘개 사장님’이었다. 지금은 편의점을 운영한다는 그를 따라 모란시장 가축 코너를 돌며 개 시장의 ‘흥망사(史)’를 들었다. 기다랗게 뻗힌 길 양 쪽으로 보신탕이나 건강원이란 간판을 달고 영업 중인 곳이 아직도 20곳이 넘는다고 했다. 하지만 성업 중인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붐빌 시간인데도 식당엔 빈 테이블이 많이 보였다. 냉장고엔 도축한 개나 염소가 진열돼 있지만, 쇠락한 느낌은 피할 수 없었다. 지금은 고기나 탕을 판매하는 식당과 개소주 같은 약탕을 전문으로 하는 업소로 전문화를 꾀했다곤 하나, 별로 나아진 것은 없어 보였다. 6년 전 성남시는 상인회와 업무협약을 맺고도 개고기 판매 자체는 막지 못했다. 상인들이 ‘개를 가두거나 도살 행위 근절’이란 조항을 비집고 외부에서 도축된 고기를 가져다 파는 데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물길을 막으면 새 물길이 나는 이치이고, 전략이 있으면 대응이 있는 법이다. 오히려 시(市)에 대한 상인들 감정만 곱지 않게 만들었다. “서로가 적당 적당 눈 감은 거야. 혐오시설 철거 대신 영업 행위는 인정한 꼴이니까. 나 같이 업종 전환 못하면 어떡해 생업인데 해야지.” 한 때 모란 시장은 ‘개도 수표를 물고 다닌다’라고 할 만큼 영화를 누렸던 곳이다. 개고기 수요는 쪼그라들고 매출은 토막의 토막이 났지만, 그렇다고 손님이 뚝 끊긴 건 아니었다. 그나마 대체 수요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동남아 건설 노동자들이 환영받는 고객이요. 어디서 듣고는 몸보신하겠다고 와요. 저들이 손님 될 줄 누가 알았겠소?” 반가운 사람은 또 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노인들이다. 일종의 향수일까? 서울은 물론이고 경기·충청지방에서도 보양식 한 그릇 먹자고 여길 찾아온다고 한다. 빈궁한 시절, 반색을 하며 먹었던 개고기 식습관이 관성적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그래서 한 번 박인 식습관이 무섭다는 것이다. 마침 식당을 나온 노인 세 분이 불콰한 얼굴로 우리를 향해 엄지 척을 해 보였다. “세월을 비껴가는 장사가 있나요. 개고기 팔아서 아들 딸 공부시키고 다 결혼시키며 살았는데 이걸 막으니 삶의 터전만 날린 거지.” 푹푹 탄식을 고아냈다. 그날 나는 그의 입심에 말려 두 시간을 모란시장에서 보냈다. 식당을 접고 편의점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었다는 그는 아직도 옛 영화가 그리운 모양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그가 한 말이 여운으로 남았다. “백정 소리도 들었지만 그래도 그때가 사는 맛이 있었는데, 시위꾼들이 가게 앞에 몰려와 ‘개만도 못한 놈들’ 이라고 소리소리 지를 땐 억장이 무너집디다. 다음 날 비로 때려치운 거요.” 주름진 얼굴이 실룩거렸다. 가는 세월 앞에 무엇인들 남아날까. 쇠락한 모란시장 풍경도 그중 하나였다. 테이블마다 북적이던 사람들, 1.4후퇴 때 피란 내려와 이곳에 평생을 묻었다는 경상도 아주머니의 걸쭉한 욕설도 한 때는 모란시장의 서정이었는데…. 그 시절의 한량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시절이 깃발처럼 흔들린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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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09

실시간 기고 기사

  • 원했지만, 탕진한 사랑
    12월 8일은 비틀스의 아이콘 존 레넌의 사후 40주기가 된 날입니다. 매년 이맘 때, 추모 인파로 붐볐어야 할 뉴욕 센트럴파크의 레넌 추모 공원엔 코로나19 때문에 사후 가장 쓸쓸한 추모회가 되었더군요. 비틀스는 젊은 날 세기의 우상이었지요. 레넌이 요노요코에 빠져 밴드를 위태롭게 할 때 그녀가 참 밉상이었는데, 흐르는 세월속에서 고등어 푸른 등처럼 선명한 레넌의 진실된 사랑의 언어를 발견합니다. “매일 신께 감사해. 운명이 우리 두 영혼을 맺어준 것을. 내가 태어난 건 오직 요노요코 널 만나기 위해서고, 내가 어른이 된 것은 너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였어.” 만인의 사랑을 받고도 오직 한 여자만 사랑했던 남자. 두 사람의 운명은 레넌이 그녀의 그림과 만나면서 시작되었지요. 사이가 깊어지면서 레넌은 비틀스와 멀어지고 해체가 선언되자 모든 비난이 그녀를 향했습니다. 음악잡지 커버 사진을 찍는 날, 레넌이 말합니다. “이게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며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고 그 유명한 ‘사랑의 포즈’ 를 취했지요.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에 지나지 않아도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다.”라는 명구를 남기면서. 그것이 마지막임을 몰랐을까. 그날 밤 레넌은 집으로 가던 중 그의 광팬 체프만이 쏜 총에 최후를 맞지요. 그러고 40년, 올해 88세의 요노요코는 “난 지금도 그를 잊을 수 없단다”며 두 아들에게 연서를 썼다고해요. 12월엔 문득 살아나는 기억들이 많아요. 젊은 시절, 매년 네 친구 가정이 함께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호두까기인형을 보고, 뮤지칼을 보던 기억이 아스라이 살아납니다. 당시 ‘호두까기 인형’처럼 12월 공연으로 빠지지 않던 것이 비련의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다룬 ‘빠담 빠담 빠담’입니다. 매번 피아프 역을 맡은 윤복희가 피를 토하듯 열창할 때, 뭉클하던 기억이 따스합니다. 거리의 노래 소녀 피아프가 파리의 유명한 카바레 사장 르프레의 눈에 띤 건 행운이었지요. 무명의 그녀에게 스타 탄생의 변주곡이 울립니다. 당대 유명한 사교모임에서 펑크 난 가수를 대신하면서죠. 그러나 그것이 그녀 운명의 서곡일 줄은 몰랐어요. 르프레를 사랑하면서 사랑에 눈 뜨지만 남자의 돌연사로 물거품이 되고 비극은 시작됩니다. 삶의 좌절을 곱씹던 그녀는 배우 이브몽땅을 만나 구원되는 듯했어요. 그녀의 인생 속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 바람둥이 이브몽땅은 오래 가지 않아 그녀를 떠납니다. 깊은 시름에 알콜로 위안 받던 그녀에게 마지막 구원자로 등판한 이가 세계 미들급 챔피언 복서 마르셀입니다. 그녀는 모든 걸 바쳐 세기의 로맨스를 불태우지만, 운명은 마르셀까지 교통사고로 앗아가죠. 기자가 묻고 답해요. “죽음이 두렵나요?” “외로움 만큼은 아니에요.” 죽음보다 무서웠던 외로움을 술과 모르핀으로 달래던 피아프. 결국 47세에 비운의 삶을 마칩니다. 피아프 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비련의 여인이 마릴린 먼로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볼이 된 먼로는 어려서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어머니를 정신병으로 잃는 극한 환경속에 성장했어요. 모든 남성을 열광시키며 한 해 30개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되었던 먼로는 굶어죽지 않고자 누드사진을 찍었다고 고백합니다. 첫 결혼에 실패하고 유명 야구선수와 두 번째 결혼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어요. 먼로는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섹시한 여자로 주목 받는 동시에 골빈 여자란 소리도 함께 들었지요. “난 잠자리에서 샤넬5 이외엔 아무 것도 입지 않아요.” 이 말에는 사람들의 시선에 숨 막혀 했던 그녀의 저항적 음유가 깔렸습니다. 행복을 희구했던 먼로는 유명 극작가와 세 번째 결혼에 성공하나 그토록 갖고자 한 아기를 유산하고 그 충격에 다시 이혼합니다. 어딜가도 환호가 넘쳐나고 영화 출연 제의가 쏟아졌지만 모두 섹스어필뿐이었어요. 극도의 신경쇠약과 무대공포증에 시달리는 먼로. 헐리우드 최고의 여배우 중 한 사람으로 찬사를 받았지만 삶은 원했던 아이도, 남편도, 행복도 거머쥐지 못하고 의문사로 생을 마칩니다. 습도, 온도, 햇빛 같은 평범한 일상을 못 누리고 주어진 제몫의 사랑마저 탕진하고 만 사람들. 이 무슨 조화 속일까. 그 속을 모르니 운명이라고 돌릴 수밖에요. 세월과 운명은 진정 거스를 수 없는 걸까. (이관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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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3
  • 살면서 밑줄 긋기
    우리는 세대를 구분할 때 종종 실수를 저지릅니다. 애나 어른이나 한 명 한 명이 다른 인생이고 그대로가 우주인데, 그렇게 보지 못하고 한 묶음으로 처리합니다. 젊은이들은 칠팔십 대 사람을 생물 연령만으로 따져 노인으로 규정하고, 사오십 대 사람은 싸잡아 아저씨로 병렬 처리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6.25 70주년을 맞으면서 깨달았습니다. 비로소 그런 인식에 매몰돼 있던 나를 끄집어낼 수 있었지요. 나라 위해 싸우다 숨진 영령 한 분 한 분이 다 광활한 우주인데, 전사자라는 한 묶음에 일렬횡대로 처리해온 내 생각이 미안합니다. 그러다 시 한편을 찾았지요. 시인 정현종의 ‘방문객’ 입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는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마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사람들에 대한 선의는 인간의 의무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선의로 대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 하나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에요. 우스꽝스럽고, 누추하고, 바보 같은 사람일지라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그분도 고결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외모는 다 달라도, 속사람은 다 같지요. 잘났든 못났든 사람에게는 나만의 영혼이 살고 있으니까요. 누가 나를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하고, 혐오스런 짓을 하더라도 “저 사람의 사는 방법이려니” 하고 넘길 일입니다. 주유천하 하는 김삿갓이 술 한 잔에 너털웃음을 짓고 다닐 수 있었던 데는 삶의 이치와 인간의 의무를 통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혐오를 앞세운다면, 그는 깨닫지도 못할 것이고 나는 더 큰 증오만 키우겠지요. 자기 자신은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 남을 바꾸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유일하게 약발이 잘 듣는 한 가지가 있다면 사람을 인격체로 예우하고 사랑으로 감싸는 일입니다. 쇼펜하우어도 만인에게 할 일은 ‘오직 선의로 대하라’는 것이었어요. 여기서 시 하나 더, 장석주의 ‘대추 한 알’을 소개합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대추 한 알에 우리 인생을 담은 시인의 눈이 아름다워요. 잘 생긴 대추나 못 생긴 대추나 똑같이 추운 밤을 견뎠습니다. 비바람과 천둥, 번개, 벼락을 맞으며 상처를 보듬었어요. 모두 우주의 사랑을 듬뿍 받아 결실한 것들입니다. 대추처럼 사람도 둥글둥글 살기까지, 제 혼자 노력으로 된 건 없습니다. 오스스 몸을 떨며 무서리를 맞고, 쨍쨍 내려쬐는 햇볕에 그을렸고요. 초승달이 둥근달이 되고 이지러지기를 또 얼마나 보며 기다렸을까. 아이 어른도 노인도 시련을 이기지 못하면 저렇게 붉고 둥근 대추 한 알을 맺지 못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지 못하고 구박함은, 선의를 저버리는 것이고 꽃잎을 때리는 빗줄기의 심술에 다름 아니죠.. 한 자리에서도 화려하게 먼저 피는 꽃이 있고, 뒤늦게 서리를 맞으며 꽃장을 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사람을 불의로 예단함은 죄악이라 했어요. 물을 주고 북을 주는 것은 사람의 몫이라 해도,,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은 오로지 하늘의 소관입니다. 나이가 들면 이따금 살아온 내가 기특하고 대견스러울 때가 있지요. 까칠한 상전을 모시느라 고생이 많았을 텐데. 이제는 내가 함부로 대해 탈이난 몸을 상전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깝다는 이유로 소중함을 모르고 살 때가 많아요. 한 번쯤 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보세요. “수고했고 미안하다. 잘 부탁한다.” 몸도 칭찬하면 새 힘을 낼 겁니다. 선의를 아니까. (이관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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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06
  • 나이 듦에 대하여
    왜 사람에게는 시든다는 말 대신 늙는다는 말을 쓸까. 나무도 꽃들도 다 시들어버린다면서 사람은 왜 세상을 뜬다고 할까. 무심코 흘려보냈던 말들이 잔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나이가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언젠가부터 보고 느끼지 못한 것들이 몸에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갑자기 눈귀가 밝아질 리도 없을 텐데... 살아온 날들로 많은 생각이 기울면서 젖는 현상일 것이다. 너무 인생을 무심히 살아왔다는, 그래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나누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연민이거나, 회한 아니면 후회일 수도 있겠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는 걸 자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것을 앞세워 살지는 않았는지, 인생이란 산허리를 내려오다가 문득 무심히 지나친 많은 일들이 잠들지 못하고 부스스 눈을 뜨곤 한다.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나를 부르고 찾기도 했을 텐데…. 그때 나는 보지 못했고 응대하지 못했던 것들이, 나이 듦이 현실이 된 나를 용하게 기억하고 불러 세운다. 석양의 그림자 같은 덧없는 인생을 살면서 부질없는 욕심과 허상을 잡으려고 때 묻히고 얼룩진 나를 말이다. 시듦으로는 그것을 알리 없다. 오직 나이 듦으로 아는 진리이다. 이는 늙는다는 말의 또 다른 음유이다. 나이가 들면 젊은 날과 달리 주고받는 것이 다르고, 떠남과 만남에도 유별함이 생기니까. 이생이 허망할수록 내생에 기대고 싶고, 병들어 건강을 다치면 무심했던 내 몸의 소중함을 깨치는 이치와 같다. 보는 눈이 흐려지면 듣는 귀라도 쌩쌩했으면 좋으련만, 귀마저 예전 같지 않다. 돌아보면 살아온 지난날들이 영특하지 못했고 좀은 미련스러웠다. 눈은 침침해졌다며 수술하고, 좋다는 건 다 찾아 먹고, 건강 보조식품까지 챙겨 들면서, 실로 귀중한 것이 귀라는 것은 잘 몰랐다. 눈은 흐려져도 살 수 있지만, 귀가 어두워지면 사람이 멀어진다는 것을…. 시력을 잃으면 청력이 강해지듯 미움을 버리면 커지는 것도 있다.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비감해지고 미움과 원망이 커진다. 소유는 머리에 망념을 부르기 쉽다. 아직도 채울 것이 남은 사람은 부족함에 갈증이 남아도, 이만하면 됐다는 사람은 마음에 족함을 갖게 된다. 옛 문장에 같은 것을 갖고도 ‘팔여(八餘 8개가 남음)’라고 만족해하는 사람이 있고, 또 누구는 ‘팔부족(八不足)’이라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기준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 기준은 누가 정해 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세우는 것이다. 나이 듦이 시듦보다 차원이 다른 것은 긴 세월을 살며 경험하고 축적한 내 인생의 스펙이 내 기준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눈부시게 푸르던 세월이 사위어 가고 있다. 생명의 경이에 눈 떴던 봄이 이울더니, 노동의 보람을 주던 여름이 오가고, 그 자리로 목마른 가을이 물들고, 그마저 잠깐, 어느새 낙엽귀근(落葉歸根)을 가늠해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 굽은 등 너머 노을 진 서녘에서 부엉이가 울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나이 듦이란, 떠난 것에 미련 두지 말고, 잃은 것에 연민하지 말고, 마음에 찌든 미움이나 원망은 관용하고 화해할 시기임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이 다 그렇지.” “별난 인생 있나?” “나도 잘한 게 없네. 미안하네.” 고까웠던 일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곰삭힌 감정은 다 흐르는 세월에 씻어내고 텅 빈 마음으로 내 삶을 되돌아보며 그곳에 명상의 시간으로 충만하자. 나이 듦이란, 비천한 인생의 한계를 알고 참회와 감사로 채우는 시간이다. 잊고 살았던 것들에 눈 뜨고, 그들을 사랑하고 감사해야 할 때이다. 살아온 것에 감사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무엇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할 시간이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이만하면 잘 살았다 감사하다.” 마음에 평강이 깃든다. 무한한 성찰과 감사 뒤로 하늘의 자비와 은총이 내린다. 태양 빛으로 짱짱한 한낮도 아름다웠지만, 낙조가 들 때의 고혹함도 매력적이다. 생의 어느 한 곳 의미가 없는 과정이 있을까. 해가 많이 기울었다. 촘촘하던 시간도 그만큼 헐거워졌다. 동네 골목에 드리운 그림자도 한층 깊고 서늘해졌다. 누가 노래했던가 나이 듦은 늙어감이 아니라 옻칠을 더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위로하면서 격려하면서 남은 세월을 배웅해야 하리라.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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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30
  • 제8회 대한민국 노벨사이언스상 대상 시상식 개최
    과학전문지 노벨사이언스가 창간 8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27일, 오후 2시 서울대학교 호암 교수회관 목련홀에서 제8회 대한민국 노벨사이언스 대상 시상식과 함께 노벨사이언스 포럼을 개최하였다. 올해는 특히 노벨 문학상에 한국의 작가 한강이 수상하게 됨에 따라서 이에 고무되어 노벨 과학상 수상도 멀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갖고 폭넓은 시상자를 선발하였다. 2024년 노벨 사이언스 상은 과학대상 4명, 과학기술대상 6명, 평화봉사상 1명, 과학기술공로상 2명, 과학교육교사상 2명, 감사장 5명 모두 20명에게 수여했다, 특히 과학대상자는 국내 최초로 경구용 치매 치료제의 글로벌 3상 임상시험 진입에 성공한 대구 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김경진, 그리고 국내외 양자정보과학 기술 생태계 조성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고등과학원 양자 우주연구센터 석좌교수 김재완 교수가 차지하였다. 그리고 과학기술 대상에는 저분자 기반 뇌질환 치료제 신약후보물질 등 치매 치료기술을 개발한 큐어버스 조성진 사장이 차지하였다. 과학 대상을 수상한 김경진 석좌교수는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신경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뇌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이번에 한국뇌연구원 제2대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지난 10년 동안 21세기 프런티어 연구개발사업의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 치료기술개발 연구사업단' 단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1998년 뇌연구촉진법 제정과 한국뇌연구원 설립 계획 수립에 기여 했다. 또한 한국뇌학회 회장, 한국뇌신경과학회 회장 등 국내외 학회장을 역임하면서 SCI급 논문을 포함한 국내외 학술지에 20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고, 2011년 대한민국학술원상 등을 수상하였다. 과학 대상을 수상한 김재완 석좌교수는 고등과학원에서 정년 퇴임했고 현재 고등과학원 양자 우주연구센터 석좌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양자정보과학 컨퍼런스(AQIS) 운영위원장으로서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연구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져 아시아권 양자물리학 발전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특히 양자물질계를 시뮬레이션 하려면 양자계로 된 컴퓨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단위 아래로 내려가면 양자물리학의 불확정성 원리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컴퓨터로는 불분명해진다. 더욱이 트랜지스터에 장애물을 설치해서 전자를 가둬두는데, 나노 단위가 되면 '터널효과'에 의해 전자가 빠져나간다. 0인지 1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양자 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게 양자컴퓨터를 만들어 중첩, 양자터널 등을 적극적으로 컨트롤 해야 한다. 양자상태를 컨트롤하고 측정하는 건 센서 기술이며 센서 기술이 발전하면 양자컴퓨터, 양자암호통신 기술도 함께 발전한다. 양자 센서는 양자컴퓨터에 비해 발전시키기가 수월하고 양자암호통신은 대규모 인프라 필요하지만 양자 센서는 대규모 인프라나 대규모 투자가 없어도 된다는 점이 장점이다. 그렇지만 양자컴퓨터도 중요하지만 이의 기반이 되는 양자 센서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양자컴퓨터는 개발됐을 경우 임팩트가 크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오류는 있지만 일정 부분 슈퍼컴퓨터보다 연산 속도가 빠른 중간 형태의 양자컴퓨터(NISQ)가 나올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노벨 사이언스 포럼에서는 기술개발 성공사례로 먹는 치매 신약후보 물질로 5천억원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큐어버스 조성진 대표와 전통 발효 연구 42년 항바이러스 효과를 입증한 홍동삼을 발명한 효성원(주) 김성현 회장이 발표하였다. ㈜ 큐어버스 조성진 대표이사는 지난 10월 16일,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파마와 먹는 치매 신약후보 물질 ‘CV-01’를 총 3억7천만 달러(5,600억원) 규모로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기술이전 이외 판매로 발생하는 로열티는 별도로 받는다. 이로써 안젤리니파마는 중국과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상업화를 할 수 있는 독점권을 갖게 된다, 조성진 대표는 KIST뇌질환극복연구단 단장을 지낸 박기덕 단장, K-MEDIhub의 진정욱 박사와 함께 연구 네트워크를 갖고 난치성 질환 및 항암제 신약 개발을 연구해온 큐어버스를 만들었다. 특히 KIST 뇌과학융합단장으로서 파키슨병, 알츠하이머, 다발성 경화증 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박기덕 박사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효성원(주) 김성현 회장은 40여년간 전통 법제와 전통 발효식품에 오롯이 몰두해 온 홍동삼 발명가이다. 누룩이나 현미를 기본으로 33가지 이상의 산야초를 법제하거나 발효시켜 항아리에서 3년 이상 자연 숙성시킨 전통 흑초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 6년근 인삼을 9증9동9포해서 추출한 홍동삼 진액을 첨가한 흥동삼 전통 흑초와 홍동삼 금강초, 홍동삼 생기단, 홍동삼 발효비누, 홍동삼 전통된장, 홍동삼 발효김치 등을 출시하였다. 동지와 입춘 사이에 해풍을 맞으며 자란 강화 인삼을 9번 찌고 9번 얼린 후 9번 건조하는 독보적인 법제 발효기술로 제조되는 홍동삼은 유효성분과 미생물의 개체수를 증가시켜 항바이러스 신물질 검출에 성공하였다. 이런 발효식품이 인체가 가장 흡수하기 좋은 천연 나노 상태로 되어 건강에 이롭고 평생 먹어도 내성이 없어 면역력 증강애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4년 대한민국 노벨사이언스상 수상자> 1) 과학대상 4명 과학대상 : 김경진 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 교수) 김재완 (고등과학원 양자우주센터 석학 교수) 우수과학자상 : 조상준 ((주) 파크시스템스 전무) 신장균 (아이삭 기술연구소 소장) 2) 과학기술대상 6명 과학기술 대상 : 조성진( ㈜큐어버스 대표) 과학기술 창조상 : 김성현 (효성원(주) 회장) 과학기술 혁신상 : 곽승환(( ㈜지큐티 코리아 대표) 과학기술 융합상 : 최환호 ((주)퀀텀인텔리전스 대표) 과학기술 창의상 : 이종찬((주) 우주엔지니어링 대표) 과학기술 신기술상 :이진호 ((주) 콘스텍코리아 대표) 3) 평화봉사대상 1명 세계 평화봉사대상 : 김주철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 선교협회 총회장) 4) 과학기술 공로상 2명 특별공로상 : 박준희 (아이넷 방송 회장) 특별공로상 : 김성현 (효성원 회장/ 동인학당 평생교육원장) 5) 과학교육교사상 2명 과학교육 우수교사상 : 안대영( 신남고등학교 수석교사) 박혁상 (청원고등학교 교사, 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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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30
  • 우리는 낮은 자입니다.
    신부 서품을 받아 한 성당의 사제가 되기 위해 떠나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비단 보자기로 싼 작은 종이상자를 내밉니다. 무엇이냐고 묻자 어머니는 사제관에 들어가거든 조용한 시간에 풀어보라고 이릅니다.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기도는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신부는 사제관 한쪽에 묻어둔 상자를 꺼내 보자기를 풀었습니다. 풀자 안에는 누렇게 빛이 바랜 아주 작은 아기 옷, 배내옷이 들어 있습니다. 그 속에 어머니 편지가 곱게 접혀 있었지요. 어떤 자리에 가 있더라도 늘 기억하라는 어머니의 기도입니다. “ 예전엔 나도 한없이 어리고 작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낮은 신부님이 돼 달라, 나도 그렇게 기도하겠다” 는 글입니다. 편지를 읽던 신부님의 가슴도 뜨거워졌겠지만, 사연을 읽는 내 눈시울도 따라 붉어집니다. 광야 같은 세상길, 어디로 어떻게 걸어가다가 고단한 삶의 하룻밤을 쉬어야 할까. 그 가늠자를 선물한 이야기입니다. 뜨거움, 기쁨, 섬김, 눈부심, 그런 것으로 가슴 벅차오르는 사연을 마주한 지 언제일까? ‘ 누구처럼’ 살고 싶다고 희망을 안겨준 분들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봄날입니다. 우리는 모두 작은 자고, 한없이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 사실을 잊고 살지는 않는지, 나도 어머니가 주신 배내옷 한 벌 가슴에 품고 살 수는 없을까. 지난 2월로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11년입니다. 스스로 바보로 칭한 추기경은 일생을 배내옷을 품고 사신 분이지요. 마흔 일곱에 한국 최초, 세계 최연소 추기경이 된 후, 일생을 스스로 바보라고 칭하며, 넉넉한 사랑으로 핍박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품어주고, 사회를 향해 묵직한 목소리를 내던 그 모습은 아직도 울림을 줍니다. 모든 사람에게 긍정의 목소리를 전해준 분이 1951년 처음 사제복을 입었을 때 선택한 성구(聖句)는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였고,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인사는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였습니다. 그는 이 시대의 참 어른이었습니다. 최근 서울대교구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펴낸 김수환 추기경’에는 세계 최연소 추기경에 오른 후 젊은 사제 김수환이 미리 준비한 유서가 있습니다. 한 장짜리 사무용지에 또박또박 쓰인 한 장의 유서는 1971년 2월 21일 밤으로 마무리됩니다. 유서에는 “그리스도께서 가장 깊이 현존하시는 가난한 사람들, 우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등 모든 불우한 사람들 속에 저는 있지 못했습니다.” “ 형제 여러분, 저의 사랑의 부족을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말이 가슴을 덥혀줍니다. 열정이 넘치는 마흔아홉 살, 추기경이 일찌감치 유서를 준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일생을 통한 추기경의 고백이고, 다짐이 아니었을까. 추기경은 잘못된 정치에도 묵직한 매시지를 날렸습니다. 정권의 수배를 받은 학생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명동성당 앞에서 경찰에게 말합니다. 나를 넘고 지나가라, 그러면 뒤에 신부들이 있을 것이고, 또 넘어가면 뒤엔 수녀들이 있을 것이오... 준엄하게 불의를 거부한 어른이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이었어요. TV를 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추기경이 ‘사랑의 미로’를 부르는 모습을 본 겁니다. 그 소박함과 추기경도 보통남자라는 모습에 우리들 눈은 웃어도 마음은 뜨거움으로 뭉클했지요. 추기경은 종교의 편 가르기를 경계했습니다. 인생의 구원이라는 대명제 앞에 천주교, 불교는 더 이상 경계 대상이 아니라며, 어느 해 부처님 오신 날에는 서울 성북구 길상사에서 열린 음악회에 법정 스님과 나란히 앉아 화합의 아름다움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촛불, 반미시위 등을 둘러싸고 일부 급진파 종교인의 공격을 받던 2004년 즈음입니다. 추기경은 자신의 색깔을 묻는 질문에 굳이 말하면 바꿔가는 ‘ 보수(補修)’라고 뼈 있는 유머로 답했지요.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깜짝 선언을 합니다. “나도 출마합니다. 기호는 1번이고, 지역구는 전국구입니다.” 바보 추기경의 유머는 늘 깨달음을 동반했지요. 정치권을 향해서는 “모든 이를 위해 목숨을 내건 예수님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하라”고 했죠. 하지만 21대 총선을 앞둔 지금. 좌든 우든 고쳐보려는 ‘보수(補修)’ 의 노력은 부족합니다. 마른 잎 서걱대는 삭막한 세상에서 한없이 낮은 자리를 찾아다닌 김수환 추기경. ‘내 탓입니다’를 선창해 사람들마다 자동차 뒷 유리에 스티커를 달게 한 그분의 따뜻한 리더십이 그립습니다. 아픔 있는 자에겐 “고통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입니다.” 위로하고, 젊은이에겐 “가끔은 칠흑 같은 어두운 방에서 자신을 바라보라.”고 등을 토닥이고, 삶의 길을 묻는 자에겐 ‘인간의 길이란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 내면적으로 풍요롭게’ 사느냐에 있습니다.” 라며 다독여 주었지요. ( 이관순님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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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23
  • 양평, ‘치유의 숲’에서
    고즈넉하다 못해 고혹하기조차 한 투명한 날빛. 사그락 사그락, 들리는 건 낙엽 밟히는 소리뿐이다. 만추로 물든 숲길은 부드러우면서 쓸쓸했다. 멀리서 산까치 울음소리가 들렸다. 더없이 높고 쾌청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농밀한 파란색 커튼을 두르고 있다. 막 볶아낸 커피 향 같은 낙엽 냄새가 이맘때 즐기는 ‘만추의 향’이다. 향 중에 ‘여름 풀향’과 ‘낙엽 향’만 한 것이 또 있을까. 보송한 가을 햇살이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쏟아졌다. ‘노는 볕이 아깝다’며 장독대를 열어놓고 이부자리를 내다 말리시던 어머니 얼굴이 가을볕을 타고 떠오른다. 숲길에 바람이 일자 우수수 낙엽들이 저마다 몸을 뒤척이고, 코끝을 스치는 낙엽 향에 후각마저 흐뭇하다. 낙엽에는 일상에서 듣기 어려운 고주파가 있어 우울증 같은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데 좋다고 한다. 그 편안함 때문일까. 낙엽을 보고 있으면 아팠던 기억과 기뻤던 추억이 동시에 밀려온다. 양평의 한 ‘치유의 숲’에서 소설 《빙점(氷點)》의 배경이 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아사히카와(旭川)의 숲을 떠올렸다. 엊그제 다시 읽기를 끝낸 두툼한 소설이 뇌파에 남긴 잔상 때문일 것이다.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소설 《빙점》은 1966년에 출간된 이후 4,300만 부 넘게 판매된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시대와 계층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작품이다. 40년 만에 다시 손에 잡은 《빙점》은 인간의 원죄를 파고드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작품의 재미와 매력을 더해주었다. 소설은 ‘섭씨 0도’라는 ‘빙점’의 모호성을 복선으로 깔고 있다. 사랑과 유혹, 배신과 복수, 희생과 용서라는 그 모호한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의 한계와 바닥에 스며 있는 원죄가 모두를 혼돈 속으로 빠뜨린다. 일밖에 모르는 병원장(스지구치)의 아내 나쓰에는 젊은 의사와 은밀한 사랑을 즐기려고 어린 딸 로리코를 밖으로 내보낸 것이, 유괴범에 의해 살해되는 비극을 불렀다. 이에 더해 아내의 부정까지 알게 된 스지 구치는 극심한 배신감과 복수심이 들끓어 잔인하게도 범인의 딸을 입양하면서 주인공들의 가슴에 갈등의 불을 지핀다. 아픔을 달래려고 아내는 새 딸에게 요코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온갖 정성을 다 쏟으면서 가정은 겉으로 다시 평화를 되찾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요코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서재를 청소하던 나쓰에는 남편의 일기장에 손을 대다가 요코의 신원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자신을 향한 남편의 증오를 알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딸을 죽인 살인범의 자식 요코에 대한 애증이 회오리쳤다. 요코는 갑자기 변한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상황을 묵묵히 견뎌냈다. 세월이 지나 18세 된 요코에게 한 청년이 나타나 사랑을 고백하는데, 나쓰에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요코가 그런 훌륭한 집안의 자제와 결혼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다. “요코가 우리 딸이 못 누린 행복을 누릴 수는 없어.” 끝내 나쓰에는 청년 앞에서 요코가 자신의 딸 로리코를 죽인 범인의 딸임을 폭로하고 만다. 그제사 요코는 자신에게 살인범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동안 많은 아픔을 이겨낸 요코였지만, 원죄의 피가 흐른다는 본질적인 죄의식은 끝내 여린 여자를 자살로 내몰고 만다. 로리코가 살해된 그 강가에서… 그러나 진실은 요코가 범죄자의 자식이 아니었다는 것. 요코를 소개한 남편 친구가 입을 연 것이다. “차마 범인의 딸을 자네에게 입양시킬 수는 없었네. 적당할 때 말하려고 했네.” 진실이 밝혀지자 부부는 죄책감에 절규하면서 요코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쓴다. 인상 깊었던 건 《빙점》의 마지막 대목이었다. 사생아로 태어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요코가 미움과 증오로 가득한 삶을 버리기 위해 하얗게 눈이 덮인 겨울날, 언덕길을 오르는 장면이다. 높은 언덕에 오른 요코는 하얀 눈길 위에 남겨놓은 자신의 발자국을 돌아보았다. 분명히 자신은 똑바로 앞을 향해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눈 위에 나 있는 발자국은 삐뚤빼뚤 흐트러져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원죄의 후예인 연약한 인간을 깨닫게 된다. 누구에게도 돌을 던질 수 없는, 사람은 모두 용서와 화해의 대상이란 것을. 사랑만이 가장 아름다운 적정 온도이며 모든 결함도 덮어줄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신이 가르치는 사랑이란 것을 말이다. 1922년 홋카이도 아사히카와 시에서 태어난 미우라 아야코는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이 일어날 때에 초등학교 교사로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어린 학생들에게 이 전쟁은 성전(聖戰)이라 가르친 군국 교사였다. 그러나 1945년 8월,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자기가 가르친 것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전쟁의 도구로 교육시킨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고, 폐병이 들도록 죄책감에 시달렸다. 미우라 아야코는 생전에, “한국이나 중국에 가게 된다면, 저는 그 나라 땅을 발로 밟고 걸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고 기어갈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작가로 성공한 후 자신의 집을 찾는 한국인 방문객들에게 먼저 바닥에 엎드리고 사죄부터 했다. “당신 나라에 일본이 행한 침략과 폭력의 죄를 참회합니다.” 용서를 구한 후 손님을 맞았다고 한다.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든다는 계절도 저물고 있다. 이때를 콕 짚어 시인 서정주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고 권했다. 고은이 쓰고 김민기가 곡을 붙인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를 부른 최양숙은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라며 만추의 손끝을 내밀어 진심을 노래했다. 자연의 색은 무한한 그리움을 일깨우기도 하지만 무한한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흙을 맨발로 밟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이나, 황토 방에 누우면 심신이 안락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맘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짧은 시간. 이 가을이 주는 자연의 색과 온도는 가장 아름답고 안온한 ‘적정 온도’를 느끼게 한다. 양평 산음 자연휴양림 ‘치유의 숲’에서 소설 《빙점》을 떠올리고, 그리고 한참을 나뭇가지에 남은 붉은 잎들이 드리는 이생에서의 마지막 미사를 지켜보았다. 늘 아름다운 건 잠시뿐. 낙엽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다. 이 또한 곧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고, 화석의 시간으로 남으리.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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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16
  • 개(犬)의 세월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동네 골목을 지나다니다 흠칫 긴장할 때가 있었다. ‘개 조심!’ 대문에 개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글이나 표지판을 보면 금방 맹견이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개 조심!’ ‘개 있으니 조심하세요’ 처럼 얌전한 문구도 있지만, 더러는 투견으로 단련된 으스스한 개를 떠올리게 하는 ‘맹견 주의!’ ‘사나운 불도그 조심!’ 같은 섬뜩한 팻말도 있었다. 그것이 도둑 같은 불청객을 차단하는 ‘엄포용’ ‘방범용’ 임을 철이 들어서 알았다. ‘맹견주의’라고 대문에 써 붙인 친척집에 삼촌 등 뒤에 붙어 가슴 조이며 들어갔다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나오는 강아지를 보고 말이다. 사기를 당한 듯한 묘한 기분에 입술만 깨물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맹견 좋아하네.’ ‘우리 집에 강아지 있어요’라고 비아냥대는 버릇이 생겼다. 라틴어 ‘카베 카넴(cave canem)’도 ‘개조심’을 이르는 말이다. 고대 로마의 저택 현관 벽에는 쇠사슬에 매인 사나운 맹견을 묘사한 벽화가 그려 있고, 그 옆에다 ‘Cave Canem’이라는 경고문을 써놓았다. 화산 폭발로 묻힌 이태리 남부 나폴리만의 도시 폼페이 유적에서 사납게 으르렁대는 개를 모자이크 한 장식이 나온 걸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개와 사람의 친소는 소만큼 친밀한 식구의 반열에 있다. 하지만 원래 개 팔자란 어떤 것인가. 찌그러진 양은 그릇에 던져 주는 먹다 남은 밥이나 감지덕지 꼬리를 흔들며 먹던 팔자가 아니던가. 그러한 개 팔자가 상전벽해가 되어 요즘처럼 상팔자로 활짝 핀 세상을 만난 것이다. 개들이 안방으로 납시고, 사람도 못 받는 호의호식 하며 건강 캐어를 받는 온갖 호사를 누리는 개의 세월이 되었다. 그러나 상놈은 상놈인 것이, 아직도 우리가 쓰는 언어에서 개는 멸시 천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개자식’ ‘개차반’ ‘개놈’ ‘개소리’ ‘개뼈다귀 같은 소리’ ‘개 풀 먹는 소리’ 등 천박한 냄새를 폴폴 풍기는 비속어에는 여전히 개를 들먹이는 말로 차고 넘치니까…. 한때는 개들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곳도 있었다. 경기도 성남의 모란시장. 많을 때는 1년에 8만 마리까지 판매됐다는 원조 개 시장이다. 전국 최대 규모의 도축시설이 있던 이곳은 끈질긴 동물 학대와 혐오 논란을 부르다가 2016년 마침내 시설 철거에 합의를 했다. 당시 성남시장은 “누구도 해결 못한 50년 숙제를 이재명이 해결했다”라고 자랑했지만, 그렇다고 개고기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시장에선 개고기가 버젓이 팔리고 있으니까. 얼마 전 성남에 갔다가 모란시장에서 옛 친지를 만났다. 근 20년 만의 만남인데도, 옛 단골손님과 식당 주인 사이엔 데면데면함 없이 금방 옛 친분이 살아났다. 그는 40년을 모란시장에서 보신탕을 끓였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각계의 인사들을 단골로 확보할 만큼 상술이 좋은 데다 성품까지 화끈해 모두가 좋아한 ‘개 사장님’이었다. 지금은 편의점을 운영한다는 그를 따라 모란시장 가축 코너를 돌며 개 시장의 ‘흥망사(史)’를 들었다. 기다랗게 뻗힌 길 양 쪽으로 보신탕이나 건강원이란 간판을 달고 영업 중인 곳이 아직도 20곳이 넘는다고 했다. 하지만 성업 중인 곳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붐빌 시간인데도 식당엔 빈 테이블이 많이 보였다. 냉장고엔 도축한 개나 염소가 진열돼 있지만, 쇠락한 느낌은 피할 수 없었다. 지금은 고기나 탕을 판매하는 식당과 개소주 같은 약탕을 전문으로 하는 업소로 전문화를 꾀했다곤 하나, 별로 나아진 것은 없어 보였다. 6년 전 성남시는 상인회와 업무협약을 맺고도 개고기 판매 자체는 막지 못했다. 상인들이 ‘개를 가두거나 도살 행위 근절’이란 조항을 비집고 외부에서 도축된 고기를 가져다 파는 데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물길을 막으면 새 물길이 나는 이치이고, 전략이 있으면 대응이 있는 법이다. 오히려 시(市)에 대한 상인들 감정만 곱지 않게 만들었다. “서로가 적당 적당 눈 감은 거야. 혐오시설 철거 대신 영업 행위는 인정한 꼴이니까. 나 같이 업종 전환 못하면 어떡해 생업인데 해야지.” 한 때 모란 시장은 ‘개도 수표를 물고 다닌다’라고 할 만큼 영화를 누렸던 곳이다. 개고기 수요는 쪼그라들고 매출은 토막의 토막이 났지만, 그렇다고 손님이 뚝 끊긴 건 아니었다. 그나마 대체 수요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동남아 건설 노동자들이 환영받는 고객이요. 어디서 듣고는 몸보신하겠다고 와요. 저들이 손님 될 줄 누가 알았겠소?” 반가운 사람은 또 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노인들이다. 일종의 향수일까? 서울은 물론이고 경기·충청지방에서도 보양식 한 그릇 먹자고 여길 찾아온다고 한다. 빈궁한 시절, 반색을 하며 먹었던 개고기 식습관이 관성적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그래서 한 번 박인 식습관이 무섭다는 것이다. 마침 식당을 나온 노인 세 분이 불콰한 얼굴로 우리를 향해 엄지 척을 해 보였다. “세월을 비껴가는 장사가 있나요. 개고기 팔아서 아들 딸 공부시키고 다 결혼시키며 살았는데 이걸 막으니 삶의 터전만 날린 거지.” 푹푹 탄식을 고아냈다. 그날 나는 그의 입심에 말려 두 시간을 모란시장에서 보냈다. 식당을 접고 편의점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었다는 그는 아직도 옛 영화가 그리운 모양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그가 한 말이 여운으로 남았다. “백정 소리도 들었지만 그래도 그때가 사는 맛이 있었는데, 시위꾼들이 가게 앞에 몰려와 ‘개만도 못한 놈들’ 이라고 소리소리 지를 땐 억장이 무너집디다. 다음 날 비로 때려치운 거요.” 주름진 얼굴이 실룩거렸다. 가는 세월 앞에 무엇인들 남아날까. 쇠락한 모란시장 풍경도 그중 하나였다. 테이블마다 북적이던 사람들, 1.4후퇴 때 피란 내려와 이곳에 평생을 묻었다는 경상도 아주머니의 걸쭉한 욕설도 한 때는 모란시장의 서정이었는데…. 그 시절의 한량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시절이 깃발처럼 흔들린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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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09
  • 다시 읽는 ‘안나 카레니나’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름으로 불행하다.” ‘전쟁과 평화’ ‘부활’과 함께 톨스토이의 3대 소설로 읽히는 ‘안나카레니나’는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톨스토이는 이 문장 하나를 얻기까지 열여섯 번 고쳐 썼다. 우리네 인생을 함축한 표현 같기도 한 이 문장은 세계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도입부 중 하나로 꼽힌다. 간결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아리송한 이 글귀에 끌려 소설을 읽은 지 50년이 지났는데, 코로나 팬데믹 덕분에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겼다. 매혹의 첫 문장이 곧바로 끌어들이는 이야기는 바람피운 남편으로 인해 산산 조각 나는 가정의 파경으로 펼쳐진다. 분노한 아내는 더 이상 남편과 한집에서 살 수 없다고 선언한다. 하인들도 저마다 살길을 찾아 뿔뿔이 떠나버리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방치되어 제멋대로 산다. 콩가루 집안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위기에 처한 이 가족의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 소설 속 여주인공인 안나 카레니나. 파국의 원죄인 문제 남편의 여동생이다. 안나는 고위직 관료인 남편과 아홉 살 아들을 둔, 외견상 모든 게 완벽한 행복의 여건을 갖춘 여성이었다. 그녀의 주선으로 망가진 오빠 집안을 봉합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불행이 잉태되었다. 정작 안나 자신이 외간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자기 가정을 깨뜨리는 상황으로 번지고 만 것이다. 가벼운 쾌락을 좇는 바람둥이 남자는 쾌락을 즐기는 것으로 행복을 꿈꾸지만, 안나는 단 한 번의 진짜 행복, 진짜 사랑에 눈을 뜬 여인이었다. 그렇게 진실된 인생을 갈구했던 여인을 ‘외도’라는 이름 아래 불행의 나락으로 밀어 넣는 건 일견 모순처럼 느껴진다. 그 모순을 잘 알기에 톨스토이는 연민의 손길로 안나의 인생을 어루만진다. 작품 구성상 안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속으로는 사랑하고 용서한 듯하다. 소설은 생명체로서의 그녀가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생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사실 안나를 비롯한 소설 속 인물 대부분이 죄를 짓고 산다 우리들처럼. 믿었던 누구는 배반하고, 누구는 증오하고, 누구는 위선적으로 산다. 또 누구는 이기적이며 때로는 도덕적 우위를 가장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그렇다. 그러면서 서로가 ‘내 잘못은 없다’고 주장한다. 잘못하지 않은 나는 행복해져야 하고, 불행해져야 할 사람은 바로 너라고 생각하면서…. 각자 입장으로 들어가 생각하면 때로는 실제로 죄가 없을 수도 있다. 죄를 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죄가 경우에 따라 충분히 이해받고 용서받을 만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저 높은 창공에 뜬 매의 눈을 하고, 한쪽은 평화롭고, 다른 쪽은 전쟁터가 된 가정을 들여다본다. 한쪽은 이유를 막론하고, 이유를 초월해 온 가족이 하나 되어 움직이는데, 다른 한쪽은 각자 이유를 들이대며 원망하고 갈라지고 시끄럽기만 하다. 톨스토이가 그려낸 소설 속 조감도의 포인트는 첫 문장에 다 나와 있다. ‘모두가 닮았다’와 ‘모두가 다 다르다’로….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은 한마음으로 한 몸을 이룬 관계일 때이다. 그러나 행복의 모습을 그렸던 톨스토이 자신은 평생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박물관에 가면 톨스토이의 가족 초상화가 있는데, 의미심장하게도 톨스토이 부부의 시선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그만큼 행복하지 않았다는 뜻 같다. 행복이란 이 단순 명료한 원리가 현실 세계에서는 그렇게도 복잡하고 어렵게 얽히는지…. 누구나 잘 아는 뻔한 얘기에 불과한 사실이 결코 뻔하지 않다는 것이다. 소설의 첫 문장이 지닌 심오한 진실이 ‘안나카레니나의 법칙’이란 말을 낳았다. 소설은 언뜻 보면 가족의 본질에 대한 통찰로 보일 수 있으나, 좀 더 파고들면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 그 힘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이 법칙은 가족의 행복에 기여하는 특정한 요소가 있는데 이런 요소가 행불행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원활한 의사소통, 상호존중, 가치관의 공유, 일치된 목적의식 등의 요소는 갖출수록 가족의 행복과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 “내 아들엔 왕자님의 DNA가 있다”라며 담임교사를 호통친 교육부 사무관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있었다. 주연은 오직 나뿐이고 남은 다 나를 돕는 조연 아니면 엑스트라로 생각하는 걸까. 세상이 갈수록 자기애에 몰입하고 환각에 빠져드는 것 같다. 먹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절에도 마을이 하나가 되었는데 달 여행이 현실화 돼 가는 21세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서로가 닮기를 거부하고 제각각의 이유로 시끄러운 시대, 이 불행한 사회를 살아내려니 힘들고 혼란스럽다. 물질문명은 갈수록 풍요로운데 언제라야 분열 없이 화목한 자아, 가정, 사회가 이루어질까. 풍요 속의 반작용일까? 죄를 짓고도 천연덕스럽게 결백을 주장하고, 법적 대응을 공언하며 들레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불같은 사랑도 한철인 것을, 자기 열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성공과 행복을 꿈꾸는 현대인들. ‘성공은 모든 실패 요인들을 모두 피할 때 가능하다’는 ‘안나카레니나의 법칙’이 이 사회를 더 냉혹하게 한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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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02
  • 존재의 가벼움
    20년 넘게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과 많은 인터뷰를 했다. 대부분 책을 쓰기 위한 만남이었다. 인터뷰 때마다 빼놓지 않는 질문 하나가 있는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려고 한 가치는 무엇인가?”였다. 갑작스러운 질문인데도 한결같이 ‘시간’에다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시간의 쓴맛과 단맛을 경험하면서 각자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시간만큼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도 없지만 불평등한 것도 없다. 사람에 따라 같은 시간을 갖고도 일군 결과물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인생이 사람과의 경쟁인 것 같아도 실은 저마다 시간과의 경쟁이다. 잔잔한 호수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의 정신 사나운 발짓 같은. 이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의 노력보다,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이들의 노력이 간절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들이는 내공이 오르려는 결심보다 더 서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남 없이 다 그러한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시간과 밀당을 하다가 훌쩍 중장년이 되고, 어느새 정년퇴직이란 깃발 앞에 하차라는 낯선 길을 만나야 한다. 그러면서 만남이 줄어들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재난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20~30대에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대책 없이 불거질 때도 있다. 나를 지탱해 주던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는 내일만 보이니 정처가 딱할 수밖에…. 평균 예닐곱의 단톡방을 갖고 있어도 나이가 들수록 호불호가 나뉘고 친구의 영역은 좁아진다. 진심으로 사귐을 갖는 친구 열 명을 세기가 간단하지 않다. 나이 들어도 자기 관리를 잘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관계를 지속할 수 있고, 서로의 욕구를 풀어주고 위로하며 걸을 수 있는 친구란 극히 제한적이다. 벌써 삼십 년 전 일이다. 큰 수술을 마치고 요양 중인 아버지를 목욕시켜 드린 적이 있다. 그때 구십 노인의 몸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한 자락 바람에도 바스러질 것 같은 앙상한 팔다리와 계곡진 가슴과 드러난 등뼈를 보고 옥상에 올라가 눈물을 흘렸다. 그 기억이 이어령 선생의 부고를 접하면서 되살아났다. 선생의 마지막 증언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면서 그때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도 아프시면서 매일같이 몸무게를 쟀다. 50kg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마음을 쓰셨다. 하루의 컨디션이 그날의 몸무게에 따라 출렁였다. 빠지는 몸무게가 그렇게 서운하신 지 “평생소원이 100근(60kg) 되는 것이었는데.” 목표에 이르지 못한 운동선수처럼 애석해하셨다. “요즘엔 아프니까 밤낮 무게를 재거든. 시간에도 무게가 있는 것 같아. 매일 가벼워져. 옛날엔 몸이 무거워지는 걸 걱정했는데, 지금은 가벼워지는 게 걱정이야... 늙으면 눈물도 한 방울 이상을 흘릴 수 없다네. 가벼워져서 많은 걸 담을 수 없어. 눈물도 한 방울이고 분노도 성냥불 획 긋듯 한 번이야.” 이어령 선생의 글은 늘 인간의 약점을 파고든다. 흐느끼며 한참을 울 수 있는 것도 젊은 날의 축복이다. 그 옛날 옥상에 올라 주체 할 수없이 흐르던 눈물 같이. 그때는 사내가 웬 눈물이 많으냐고 할머니가 걱정을 다 하셨는 데, 아버지가 어느 날 “눈물이 속절없이 말라버린 갈천이 되었다”라고 툭 던지신 말씀이 벌써 나의 말이 되는 것을 느낀다. 평생을 두 발로 혼자 걸을 줄 알았는데 지팡이를 짚으시면서는 “마른 수수깡처럼 하루가 다르게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한다”라는 그 말씀도 나름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의 ‘가벼워진다’는 말에서 슬픔의 냄새가 났다. 늙은 몸은 하루에 얼마씩 가벼워질까? 아버지는 어머니를 앞서 보내고 10년을 홀로 사시면서 “하루에 깃털 몇 개씩 빠지는 것 같다”라며 가벼워지는 육신을 아쉬워하셨다. 그러나 내겐 몸은 가벼워지되 존재의 무게는 반대로 버거워진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들렸다. 그것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친구에게서 느꼈다. 인생을 함께 나눈 친구는 지난해 아내를 유방암으로 작별했다. 48년을 함께 살은 생의 동반자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온통 세상의 무게가 그의 어깨 위로 쏠리는 것 같았다. 같은 해 또 한 친구는 43년을 함께 살던 아내와 이혼했다. 각기 다른 아내의 부재를 겪는 친구들이지만 배회하는 쓸쓸한 눈빛은 비슷했다. 뜨거운 발열로 짝을 찾아 시작한 삶이 차가운 이별로 끝나는 건 결혼과 이혼뿐인가. 생과 사도 같은 과정이 아닌가. 사별로 인한 별리의 슬픔도 크지만, 살면서 갈라서는 이별은 또 다른 아픔이다. 1년 전 황혼 이혼한 친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이 무언가를 조금씩 쌓아 올리는 기쁨의 것이라면, 이혼은 적은 하나까지 몽땅 까놓고 나눠야 하는 가늠조차 어려운 그 기분”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은 이혼을 하고도 예사롭게 만나 식사도 한다지만 나이 들어서는 그마저 예사롭지 않다. “공유했던 시간이나 추억까지 나눌 것과 폐기할 것을 가르는 허망한 인생 세계”가 그림자처럼 따라붙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내린 삶의 뿌리가 깊어서일 것이다. 오늘 아침, 조카가 결혼 8년 만에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는 반가운 출산 소식을 들었다. 만인의 축복을 받을 만한 집안의 경사다. 시험관 아이로 어렵게 탄생한 아기에게 엄마는 무슨 말로 기쁨의 첫 운을 뗐을까. 한쪽에서는 주먹을 꼭 쥔 생명이 태어나 그날부터 무게를 더하고, 다른 한쪽에선 서서히 주먹을 풀며 매일 가벼워짐을 느끼면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두 손에 시간을 꼭 쥔 존재와 시간을 놓는 존재가 상극으로 교차하는 세상 가운데 오늘도 우리는 조금씩 가벼워진다. 하루에 ‘몇 그램’씩….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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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25
  • 존재의 가벼움
    20년 넘게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과 많은 인터뷰를 했다. 대부분 책을 쓰기 위한 만남이었다. 인터뷰 때마다 빼놓지 않는 질문 하나가 있는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려고 한 가치는 무엇인가?”였다. 갑작스러운 질문인데도 한결같이 ‘시간’에다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시간의 쓴맛과 단맛을 경험하면서 각자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시간만큼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도 없지만 불평등한 것도 없다. 사람에 따라 같은 시간을 갖고도 일군 결과물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인생이 사람과의 경쟁인 것 같아도 실은 저마다 시간과의 경쟁이다. 잔잔한 호수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의 정신 사나운 발짓 같은. 이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의 노력보다,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이들의 노력이 간절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들이는 내공이 오르려는 결심보다 더 서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남 없이 다 그러한 인생을 살았다. 그렇게 시간과 밀당을 하다가 훌쩍 중장년이 되고, 어느새 정년퇴직이란 깃발 앞에 하차라는 낯선 길을 만나야 한다. 그러면서 만남이 줄어들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재난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20~30대에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대책 없이 불거질 때도 있다. 나를 지탱해 주던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는 내일만 보이니 정처가 딱할 수밖에…. 평균 예닐곱의 단톡방을 갖고 있어도 나이가 들수록 호불호가 나뉘고 친구의 영역은 좁아진다. 진심으로 사귐을 갖는 친구 열 명을 세기가 간단하지 않다. 나이 들어도 자기 관리를 잘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관계를 지속할 수 있고, 서로의 욕구를 풀어주고 위로하며 걸을 수 있는 친구란 극히 제한적이다. 벌써 삼십 년 전 일이다. 큰 수술을 마치고 요양 중인 아버지를 목욕시켜 드린 적이 있다. 그때 구십 노인의 몸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한 자락 바람에도 바스러질 것 같은 앙상한 팔다리와 계곡진 가슴과 드러난 등뼈를 보고 옥상에 올라가 눈물을 흘렸다. 그 기억이 이어령 선생의 부고를 접하면서 되살아났다. 선생의 마지막 증언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면서 그때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도 아프시면서 매일같이 몸무게를 쟀다. 50kg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마음을 쓰셨다. 하루의 컨디션이 그날의 몸무게에 따라 출렁였다. 빠지는 몸무게가 그렇게 서운하신 지 “평생소원이 100근(60kg) 되는 것이었는데.” 목표에 이르지 못한 운동선수처럼 애석해하셨다. “요즘엔 아프니까 밤낮 무게를 재거든. 시간에도 무게가 있는 것 같아. 매일 가벼워져. 옛날엔 몸이 무거워지는 걸 걱정했는데, 지금은 가벼워지는 게 걱정이야... 늙으면 눈물도 한 방울 이상을 흘릴 수 없다네. 가벼워져서 많은 걸 담을 수 없어. 눈물도 한 방울이고 분노도 성냥불 획 긋듯 한 번이야.” 이어령 선생의 글은 늘 인간의 약점을 파고든다. 흐느끼며 한참을 울 수 있는 것도 젊은 날의 축복이다. 그 옛날 옥상에 올라 주체 할 수없이 흐르던 눈물 같이. 그때는 사내가 웬 눈물이 많으냐고 할머니가 걱정을 다 하셨는 데, 아버지가 어느 날 “눈물이 속절없이 말라버린 갈천이 되었다”라고 툭 던지신 말씀이 벌써 나의 말이 되는 것을 느낀다. 평생을 두 발로 혼자 걸을 줄 알았는데 지팡이를 짚으시면서는 “마른 수수깡처럼 하루가 다르게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한다”라는 그 말씀도 나름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의 ‘가벼워진다’는 말에서 슬픔의 냄새가 났다. 늙은 몸은 하루에 얼마씩 가벼워질까? 아버지는 어머니를 앞서 보내고 10년을 홀로 사시면서 “하루에 깃털 몇 개씩 빠지는 것 같다”라며 가벼워지는 육신을 아쉬워하셨다. 그러나 내겐 몸은 가벼워지되 존재의 무게는 반대로 버거워진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들렸다. 그것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친구에게서 느꼈다. 인생을 함께 나눈 친구는 지난해 아내를 유방암으로 작별했다. 48년을 함께 살은 생의 동반자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온통 세상의 무게가 그의 어깨 위로 쏠리는 것 같았다. 같은 해 또 한 친구는 43년을 함께 살던 아내와 이혼했다. 각기 다른 아내의 부재를 겪는 친구들이지만 배회하는 쓸쓸한 눈빛은 비슷했다. 뜨거운 발열로 짝을 찾아 시작한 삶이 차가운 이별로 끝나는 건 결혼과 이혼뿐인가. 생과 사도 같은 과정이 아닌가. 사별로 인한 별리의 슬픔도 크지만, 살면서 갈라서는 이별은 또 다른 아픔이다. 1년 전 황혼 이혼한 친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이 무언가를 조금씩 쌓아 올리는 기쁨의 것이라면, 이혼은 적은 하나까지 몽땅 까놓고 나눠야 하는 가늠조차 어려운 그 기분”이라고 했다. 젊은 사람은 이혼을 하고도 예사롭게 만나 식사도 한다지만 나이 들어서는 그마저 예사롭지 않다. “공유했던 시간이나 추억까지 나눌 것과 폐기할 것을 가르는 허망한 인생 세계”가 그림자처럼 따라붙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내린 삶의 뿌리가 깊어서일 것이다. 오늘 아침, 조카가 결혼 8년 만에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는 반가운 출산 소식을 들었다. 만인의 축복을 받을 만한 집안의 경사다. 시험관 아이로 어렵게 탄생한 아기에게 엄마는 무슨 말로 기쁨의 첫 운을 뗐을까. 한쪽에서는 주먹을 꼭 쥔 생명이 태어나 그날부터 무게를 더하고, 다른 한쪽에선 서서히 주먹을 풀며 매일 가벼워짐을 느끼면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두 손에 시간을 꼭 쥔 존재와 시간을 놓는 존재가 상극으로 교차하는 세상 가운데 오늘도 우리는 조금씩 가벼워진다. 하루에 ‘몇 그램’씩….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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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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